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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피로 속 따뜻함, 튀르키예 속담으로 되찾는 이웃 정

by motungiingan 2025. 6. 8.

 

스마트폰 알림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SNS 피드를 보며 하루를 끝내는 우리. 디지털로 넘치는 정보 속에서 마음은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과는 연결되어 있으나, 정작 필요한 ‘정’은 사라진 시대. 이럴 때 필요한 건 아날로그 감성, 그리고 속담 같은 따뜻한 언어입니다. 튀르키예의 속담은 단지 외국의 지혜가 아니라, 현재 디지털 피로에 지친 우리에게 진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이웃을 만나고, 나눔을 배웁니다.

 


 

아슬아슬 쌓여있는 6개의 초코파이를 보니 자동으로 흥얼거려지는 CM송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속담이 이웃을 다시 -연결하다

“Komşu komşunun külüne muhtaçtır.” 꼼슈 꼼슈눈 무흐타취트르

이웃은 이웃의 재까지도 필요하다. 이 문장이 주는 울림은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튀르키예에서 이 속담은 아주 일상적인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물을 빌리거나, 작은 설탕 한 스푼, 심지어 뜨거운 숯 한 줌을 옆집과 앞집에서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문화. 중요한 건 그것이 ‘민폐’가 아니라 ‘정’이라는 점입니다. 디지털 시대, 배달의 민족인 우리는 모든 걸 주문하고 집에서 비대면으로 택배와 음식을 받으며, 혼자 살아갑니다. 무엇이든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되지만, 그 안에 ‘누군가의 손’은 없습니다. 바로 그 공허함을 튀르키예 속담은 채워줍니다.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삶을 회복하게 해줍니다. 어릴 때 손 전화기가 없어도 딱히 불편한 것 없이 이웃 친구집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눌러서 불러내거나 놀이터에서 기다리면 자연스레 만나게 되고, 지우개 좀~ 하면 거리낌 없이 빌려주곤 했는데 지금은 그 마저도 어색하고, 1년이 넘도록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아도 손가락으로 몇 번 까딱 거리면 소통을 할 수 있지만 감정을 도통 읽을 수 없는 연결 점에 있는 듯합니다. 저는 이 상황이 희한하게도 몸은 편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합니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땐 직접 눈을 보며 말해야 하고, 안되면 목소리로라도 소통을 해야겠더라고요.     


나눔의 진짜 의미를 -되새기다

튀르키예에는 또 다른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Paylaşmak güzeldir.” 파이쉬막 규젤드르 – 나눔은 아름답다. 이 말은 그저 예쁜 문장이 아닙니다. 실제로 튀르키예 가정에서는 나눔이 일상입니다. 자신의 식사 한 접시를 나누고, 제일 맛있는 빵 조각을 손님에게 내놓는 문화.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도 ‘손님은 신의 손님’이라며 대접하는 정신은 나눔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뿌리 깊은 전통인지 보여줍니다. 디지털 세상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빠릅니다. 그래서 누군가와 발맞춰 천천히 나누는 시간이 사라졌죠. 하지만 속담은 그 속도를 늦춰주며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너는 누구와 마음을 나누고 있니?” 물질적인 것이 아닌, 눈빛과 온기를 주고받는 시간이야말로 진짜 나눔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말이죠. 남에게 폐끼치기 싫어서 괜히 신경 쓰여 마음을 나눌 여력조차 없는 저는 시간을 두고 차차 되새김질하며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 생겼습니다.


지친 마음을 쉬게 하는 속담의 힘

디지털 피로는 단순히 눈의 피로를 넘어 마음의 피로로 번집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들로 가득차고,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와 끝없이 비교에 비교를 더해 비교되는 삶. 이런 시대에 속담은 ‘쉼표’ 같은 존재입니다. 특히 튀르키예 속담은 그 뿌리가 이야기와 생활 속에 있어,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쉬게 합니다. 예를 들어  “Azıcık aşım, kaygısız başım 아즈즉 아쉼 카이스즈 바쉼 - 조금 먹어도 걱정 없는 마음이 낫다. 같은 속담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무조건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이 아니고, 마음 편한 것이 진짜 복이라는 것을요. 이 짧은 문장에서 느껴지는 여유는 디지털 속도의 반대편에 있는 따뜻한 ‘느림의 미학’입니다. 

속담은 삶의 리듬을 다시 회복하게 해주는 고요한 지혜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와 정, 그리고 휴식은 바로 이 짧은 문장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한계에 도달할 때마다 아이쇼핑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딱 이거다 싶은 아기자기한 것을 발견하게 되면 살까, 말까 고민하다 사버리는데, 이것마저도 없으면 어떻게 살라고 스트레스를 받은 나에게 주는 보상이라며 죄책감을 덜기 위해 스스로를 세뇌시키기도 합니다. 결국, 정신 차리고 보면 예쁜 쓰레기가 집에서 뒹굴고 있습니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언제쯤이면.. 걱정 없는 마음으로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튀르키예 속담은 우리가 잊고 있던 갓지은 밥과 같은 인간의 온기와 살가운 관계, 콩 한쪽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다시 되새기게 해 줍니다. 갑작스레 건네는 한 마디에 왠지 서로가 어색해지고, 마음은 복잡해도 말은 따뜻할 수 있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속담처럼 말하고, 속담처럼 나누며 살아간다면 이 시대도 그리고 전혀 외롭지 않다고 말을 해오던 나, 자신도 덜 외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 옆자리의 누군가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보세요.
당신의 말 한마디가 그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